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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강덕경` 인터뷰 (125)

미처 끝내지 못한 낮은 목소리... 종군위안부 혹은 정신대라고 부르는 우리 할머니들. 강덕경 할머니는 그 분들 중의 한 분입니다.

경남 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졸업하고 고등과에 진학한 1944년 여름, 나이 열 여섯에 할머니는 여자 근로정신대에 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후지코시 비행기 공장에서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힘든 노동에 시달리자 한밤중에 친구와 탈출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헌병대에 붙잡혀 야산에 끌려가 강간을 당한 뒤 1년간 `하루에`라는 이름으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습니다. 광복 후 할머니는 가까스로 조국에 돌아왔지만 차마 고향에 돌아갈 수 없었습니다. 온갖 궂은 일을 하며 전국을 떠돌며, 그렇게 50여 년을 살아오던 할머니에게 새로운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김학순 할머니가 과거 자신이 일본군의 위안부였다고 용기 있는 증언을 하신 겁니다. 강덕경 할머니 역시 과거에 당신이 겪어야 했던 아픔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지 않기 위해 정신대였다는 사실을 밝히기로 하셨습니다.

그 후, 위안부 출신 할머니들을 위해 마련된 <나눔의 집>에서 공동 생활을 하며 할머니는 과거의 아픈 역사를 표현하는 그림 작업을 통해 30여 점의 작품을 남겼습니다. 할머니는 또 <한국 정신대문제 대책협의회>가 주최하는 <수요 시위>에 빠짐없이 참가했습니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벌어지는 한 시간의 <수요 시위>를 마치면 며칠씩 앓아 눕곤 했지만 언제나 어김없이 참석해 일본 정부의 공개 사과와 정부 차원의 배상을 외쳤습니다. 폐암으로 입원해 있던 중 위안부 출신 할머니 몇 분이 일본의 민간 단체로부터 위로금을 받은 사실을 알고, 할머니는 `우리들은 단결해야 해.`란 말을 남기고 혼수상태에 빠졌습니다. `나의 모든 것을 역사에 남겨 달라. 우리가 어떻게 살았는데 더러운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냐.`고 눈을 감는 순간까지 <일본여성평화기금>의 위로금 제공 제의를 거부했습니다. 할머니는 정신대라는 과거를 역사에 남기는 작업을 당부하고 97년 한많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나눔의 집> 할머니들은 말합니다. "정신대를 아직도 한국의 수치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사실을 몰라도 넘 모른다."고요.

강덕경 : 1929년에 경남 진주에서 나다. 1944년에 여자 근로 정신대로 일본에 끌려가 위안부 생활을 하다. 1992년 <나눔의 집> 입주 후 그린 그림으로 10여 차례 전시회를 갖다. 1997년에 폐암으로 숨을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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