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란 직업을 소개하는 글을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이 글을 쓰기 위해 고민을 했는데, 세상에 그만큼 또 지루한 글이 또 있을까라는 암담한 생각이 들었다. 시인, 그건 그냥 시를 쓰고 지면에 발표하고 그 시들을 묶어 시집을 내는 일을 하는 사람인데 그것에 대해 대체 더 무엇이라고 말할만한 것이 있는가 말이다. 물론, 시를 쓰는데 있어 문학에 대한 나름의 방향성이나 사명감 같은 것이 있긴 한데, 그건 작품으로 표현할 것이지 소개를 해야 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게다가 시인이란 돈벌이가 되는 직업도 아니니 구구절절 얼마나 청승맞을 것인가.
그래서 이 글의 서두를 어떻게 풀어나갈까 고민하던 중에 나는 2006년에 떠났던 유럽여행의 일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더블린에서 코크로 가던 열차에서 가이드들과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났다. 나는 이 이야기를 통해 시인이란 무엇인지 말해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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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를 여행할 때의 일이다. 그때 나는 더블린에서 코크로 가는 열차에 타고 있었다. 코크는 아일랜드 제2의 도시이자 특히 타이타닉호의 마지막 기착지인 코브 항과도 가까웠다.
이른 아침 나는 휴스턴 역에서 노란색 점퍼를 입고 있는 투어회사 가이드를 만났다. 노란 점퍼를 입은 가이드들은 머리가 하얗게 샌 할아버지들이었는데, 아일랜드에서는 은퇴를 하고 관광 가이드일을 하는 것이 꽤 일상적인 것 같았다. 우리는 정해진 시간에 열차에 올랐고 열차는 경쾌하게 출발했다.
▲ 코브로 향하는 열차 (ⓒgeopraph)
나는 혼자 앉아서 창밖을 보다가 전날 구매해 가방에 넣어둔 제임스 조이스-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가로 시와 소설에 모두 능했다.-의 단편집 『더블린 사람들(Dubliners)』을 꺼내 들었다. 가이드들이 객차에 탄 고객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점검할 사항을 확인한 후 나에게도 다가왔다. 그들은 내가 영문판 『더블린 사람들』을 읽고 있는 게 신기했는지 조이스를 읽나요 라고 물어보며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는 그들은 즐거운 표정으로 만담을 나누듯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나이 먹고는 조이스를 잘 읽지 않아요. 왜냐하면 우리는 학창 시절 때 정말 열심히 조이스를 읽었거든요. 아니, 자네 정말 조이스를 열심히 읽었다는 거야? 물론, 그렇지. 침을 흘려가며 읽었잖아. 무슨 소리야. 이 친구야. 침을 흘리면서 잤겠지. 읽지 않고 잠을 잘 수 있었다는 말인가? 아, 그건 그렇군. 그때 우리는 더블린의 안개는 아일랜드 해와 리피 강이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조이스의 언어가 만든 것이란 걸 배우긴 했지. 교실 밖의 안개가 우리가 앉아 있는 책상에까지 깃들게 만든 것은 조이스였으니까.
나는 그때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이렇게 말했다. 지금 그가 창조한 더블린의 안개는 한국의 어느 평안한 가정집 책상 위에도 스며있다고 말이다. 우리는 함께 웃었다. 그리고 마무리 짓듯이 그들은 말을 이어갔다.
그가 우리에게 알려준 졸음의 시간은 지금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것이랍니다. 아마도 우리는 인생의 지루함을 이미 그에게서 배웠던 거 같아요. 지루함이야말로 인생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순간순간 소중한 것을 마주할 수 있게 되죠. 아마 그가 아니었다면 우리는 우리의 소소한 삶을 사랑하는 법을 일찍 배우지 못했을 거예요. 학창시절에 책상에서 조는 즐거움이 얼마나 행복한 추억이 되는지 말이오.
▲ 제임스 조이스의 흉상 (ⓒwikimedia)
아. 이 멋진, 더블린 사람들. 그들의 표정에는 삶에 대한 애정이 깊이 묻어나는 주름진 미소가 자리잡고 있었다. 그 미소는 그들이 고통스런 일들을 겪은 뒤에도 꺾이지 않았음을 증명해주는 주름이었다. 그들의 주름진 미소는 그래서 매우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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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일화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별다른 것이 아니다. 시인이 되고자 하는 열망은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의 순간들을 어떻게 살아냈는지 말하고 싶은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시쓰기는 그런 노력 중에 하나이다.
더블린에서 코크로 가는 기차에서 이야기를 나눈 할아버지 가이드들은 직접 시를 써서 나에게 읽어준 것은 아니지만 그 무엇보다 시적인 것을 나에게 선물로 주었다. 그것은 그들의 이야기이고 무엇보다 그들이 견뎌온 삶을 사랑하는 모습 그 자체였다. 다만 나는 이런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주기 위해 시를 썼고 시인으로 인정받았을 뿐이다.
아무튼, 그런 매력이 있어 법조인, 의사, 경찰관, 회사원 등 번듯한 직업이 있음에도 시인이 되려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다른 직업을 가지고도 시를 쓰면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 그것도 아마 시인이란 직업의 매력이 아닐까.
[추가 인터뷰]
Q1. 작가님의 작품 중 좋아하는 작품 하나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제 작품 중에서 제가 아끼는 작품을 고르라는 주문은 늘 어렵게 느껴지네요. 아직 시집을 준비하고 있는 중이라서 더 조심스러워지기도 하네요. 음. 망설임 끝에 제 꿈인 시인이 될 수도 있겠다는 느낌을 준 작품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등단작 중 한 편인 「강변주차장」이라는 시인데요. 이 시를 쓰고 나서 시가 많이 늘었거든요. 제 시가 대부분 긴 편인데 좀 짧기도 해서 소개해봅니다.
그날은 견인되어 온 차도 없었다. 강변 주차장 휑하니 남은 건, 주인 없는 차들뿐이었다. 밤이 되자 언 강 위로 눈이 내렸다. 강변도로에는 속도를 잃은 차들이 고요 속으로 들어가고 가로등 불빛은 길을 넓히는 적막에 발이 푹푹 빠지고 있었다. 소리들의 결빙은 점점 언 강의 무늬를 닮아갔다. 철제 경비실 밖 갑작스런 경적 소리, 결빙된 소리들 순식간에 깨져 나갔다. 일주일째 방치된 차 얼다얼다 혼자 울었다. 차창을 부수고 얼어붙은 경적을 뜯어냈다. 깨진 유리처럼 눈 내리고 짧은 호각 소리 설원으로 이울어갔다. 그제서야 바람 속에서 눈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차들이 백미러를 쫑긋대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부터 이명은 혼자 힘으로 울던 경적 소리를 자꾸 견인해 왔다. 눈 덮인 강변 주차장으로 날 견인해 갔다.
―「강변주차장」
Q2. 시를 좋아하고 시 쓰기를 즐겨하는 학생들을 위해 시를 좀 더 잘 쓸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중고등학생 때 시를 써본 경험이 없어서 말하기 좀 어렵게 느껴지는데요. 그래도 도움이 될까 하여 이야기를 몇 마디 해볼까 합니다.
저는 중고등학교 때에는 자기 나름의 독서 목록을 만들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목록은 잡다할수록 좋을 거 같아요. 그리고 또래들이 생각하는 거나 또래들이 이야기하는 사는 이야기를 많이 들으세요. 그리고 그 얘기들에 공감하면서 자기 나름의 표현을 찾아보세요. 자기 이야기가 되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되도록 솔직하고 편하게 시를 쓰세요. 그것들이 모이면 결국 나중에 좋은 시를 쓰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세상을 시적으로 읽는 방식과 시의 진정성을 공부하라는 얘기이지요. 진정성이란 시의 근간은 나중에 시의 기교적 측면을 배울 때에 더욱 필요한 힘이 되요. 실제로 중고등부 운문쓰기에서 진정성있고 표현이 솔직하고 참신한 작품이 높은 평가를 받아요.
Q3. 이 글을 읽는 학생들에게 작가님의 응원 메시지 부탁드릴게요!
제가 말씀드리는 삶을 사랑하는 말이 별로 와닿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런데 우리는 늘 무엇이 되라고 넌 무엇이 되겠냐고 요구받기만 하고 살잖아요. 삶을 사랑하는 일은 그런 거와는 달리 내가 펼치고 싶은 것을 탐구하고 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런 얘기하면 안 믿을지도 모르겠는데요. 저 돈 잘 못 버는 시인이거든요. 그런데,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그 바쁜 친구들을 어쩌다 만나면 저를 엄청나게 부러워해요. 그 친구들이 부러워하는 이유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 때문이에요. 물론, 그것만이 아니라 업무지시를 내리는 직장 상사 등등이 없어서 그렇기도 하겠죠. 제 작품 쓰는 것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상사 같은 건 없거든요. 그보다 무서운 독자가 있다는 건 그 친구들은 잘 몰라요.
아무튼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자기가 생각하는 삶을 사는 게 어렵긴 하지만 행복하다는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하든 자기의 삶은 소중한 거거든요. 아주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세요. 그게 여러분을 지켜줄 거예요. 그게 아무리 사소하고 작은 것이라도. 저는 시를 쓰는 것으로 여러분의 삶을 응원할게요. 누구나 자기 자신인 삶을 위하여.